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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를 읽고
작성자 박영환 목사 작성일 2014/03/07 16: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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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 라게스크비스트의 노벨 문학상[1951년] 수상작인 ‘바라바’를 읽고 그저 감명 받았다고만 표현하기에는 나의 표현력이 너무 초라하고 한심하고 실망스럽기만 하다.

‘바라바’ 그는 누구인가?

‘바라바’ 주변 사람들부터 살펴보자. 아니, 그의 죄명부터 살펴보자.

그는 살인자요, 강도요, 방화범이요, 성 추행범이요..... 이 세상에서 영원히 격리 되어야 할, 한 마디로 흉악범이다.

그러니 그를 반겨줄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 생각일 뿐이다.

세상은 요지경이라, 그에게도 친구가 있다. 끼리끼리라고 하지 않던가, 패거리라고 말하지 않던가.

그를 맞아주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사람들은 그들을 술집 작부라고 부른다. 그들은 왜 이 흉악범과 어울리며, 그를 맞이해 줄까? 보통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는 신분으로 이 사회로부터 소외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이 사회에 대한 적개심으로 ‘바라바’와 기꺼이 어울리며, 그를 맞이해 준다.

그가 2000년 전 당시, 정신 나간 유대인들, 참으로 한심한 바리새인과 장로, 종교계 지도자들이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주장한 덕분에 죽음의 끝자락에서 인류 역사 이래로 가장 큰 행운을 입고 살아 돌아 왔을 때, 그의 패거리들은 자기들이 살아 돌아 온 것처럼 술집에서 이 세상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은 자들만의 향연을 벌였을 것이다.

그때 바라바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책은 그 부분을 잘 묘사하고 있다.

가녀린 청년, 아무리 생각도 죄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그래서 목소리조차도 꼭 계집아이 같아서 십자가의 무서운 형벌과는 도저히 거리가 먼...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이란 팻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왼편의 강도가 비웃을 때도 아무런 대꾸조차도 못하여 비겁해 보이기까지 하는 ... 그 청년에 대한 생각이 바라바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 청년 때문에 무시무시한 십자가의 형벌을 면하게 된 바라바는 겨우 살게 됐다는 기쁨보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이 현실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만약, 왼편의 살인강도와 비교해서 자신이 정신 나간 유대인들의 선택을 받아 살게 되었다면 그는 기뻐했으리라. 승리감마저 느꼈으리라.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그 누구보다도 용맹스럽고, 패기 차고, 강인하다고 생각하는 자신과 비추어 볼 때,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 이 가냘픈 청년과의 비교에서 자신이 살게 된 것에 대하여 이상스러울 정도의 야릇한 감정으로 미안함과 쑥스러움, 나아가 창피함을 느꼈을 것이고 호기심마저 들었을 것이다.

바라바가 비록 자유의 몸은 되었지만 그의 호기심은 오히려 그 청년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결국 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다까지 십자가의 여정을 숨죽이며 지켜보았고 마지막 그 청년이 숨을 거둘 때, 우레 소리와 더불어 하늘이 어두워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 날 때, 바라바만큼은 하늘의 진노를 조금은 감지했으리라...

당연히 자신이 십자가의 형벌을 받아야하고 그 청년은 살아 있어야 한다. 최소한 인간들의 세상이라면 말이다. 아무리 배우지 못했고, 세상에서 막 살아 온 그였지만, 정의가 뭐고, 합리가 뭔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죽는 그 날까지 바라바는 그 청년을 떨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 인간이라면 말이다.

훗날 그의 귀에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자기대신 죽은 그 청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소문을 듣고 그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그럴 일이 없다고 애써 부인하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아도 바라바의 생각은 그 청년에게서 떠날 수 없었으리라

빌라도가 자신의 법정에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비아냥거리며 질문할 때 “네 말이 옳도다”며 요상한 대꾸를 하는 그 청년을 보면서 바라바는 이제 무서운 십자가의 형벌 앞에 놓인 자신의 처지를 잠시 잊고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답이 빌라도를 비롯하여 정신 나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유대인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키게 하여 빌라도가 바라바와 예수 둘 중에 한 사람을 놓아주자는 제안에 한 사람의 반대도 없이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결정이 자신의 운명을 이렇게 바꾸어 놓을 줄이야 그가 그때는 어찌 알았겠는가...

그는 로마 병정의 채찍질에 일어서지도 못하여 누군가가 대신 십자가를 져주어야 할 정도로 연약했고 누군가를 때리고 얻어맞고 하는 일에 이골이 난 바라바에게 그 청년은 상대도 되지 못하는 아주 연약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 연약함 속에 숨어있는 강인함과 여유로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평정심을 바라바는 보았고, 오히려 자신의 무력함이 고개 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 청년을 정죄할 때 아무런 변병도 못하는 그래서 비겁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청년에게, 보통 사람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자비로움과 위대함 마저 느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이 후에 전개되는 바라바의 행적과 결론에 상관없이 나는 바라바의 눈물을 볼 수 있었다. 빌라도의 뜰 안에서 새벽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하염없이 통곡하였던 베드로처럼 그는 울고 또 울었으리라...

나는 누구인가?

바라바의 패거리들인가?

세상에서 실패하여 세상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고 사는 인생의 실패자, 소외 된 자인가?

우쭐대며 누군가를 정죄하며 자신이 거룩한 줄로 알고 살아가는 성도인가?

바로 그 누구의 죄도 아닌 내 죄 때문에 내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서 고통 속에 대신 죽으신 예수를 떠 올리며 평생 빚진 자로 살아가야 하는 바라바인가?

내 죄의 무게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2014년 2월 26일

박영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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